성폭행 의붓아버지 살해 사건

1. 성폭행 의붓아버지 살해 사건

. 대법원 1992.12.22, 선고, 92도2540
. 살인

. 이 판결의 의미

(1) 침해행위가 반복 계속될 염려가 있다면 이에 대한 예방적 정당방위가 허용될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판시를 남긴 점은 획기적이다. 그러나 결국 정당방위 요건으로서의 상당한 이유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아 정당방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과잉방위의 성립도 인정하지 않았다.

(2) 이 사건은 근친 성폭력의 실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어 김부남 사건과 함께 1993년에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다.

2. 판시사항 및 판결요지

가. 정당방위의 성립요건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어야 하고,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되나, 그 방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 의붓아버지의 강간행위에 의하여 정조를 유린당한 후 계속적으로 성관계를 강요받아 온 피고인이 상피고인과 사전에 공모하여 범행을 준비하고 의붓아버지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식칼로 심장을 찔러 살해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결여하여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

다.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에 관한 판단방법

형법 제10조 소정의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전문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범행의 경위, 수단,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제반자료와 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피 고 인】김진관 외 1인
【상 고 인】피고인들
【변 호 인】변호사 전봉호 외 19인
【원심판결】서울고등법원 1992.9.14. 선고 92노1511 판결
【주 문】상고를 모두 기각한다.
피고인 김진관에 대하여는 상고 후의 구금일수 중 90일을 본형에 산입한다.

3. 사실관계

피고인 김진관은 피고인 김보은으로부터 피해자 김영오와의 관계를 고백받고 같이 번민하다가 피해자를 살해하고 강도로 위장하기로 공모하였다.

피고인 김진관이 이 사건 범행 전날 서울 창동시장에서 범행에 사용할 식칼(증 제4호), 공업용 테이프(증 제7, 제10호), 장갑 등을 구입하여 가지고 범행장소인 충주에 내려가서 피고인 김보은과 전화통화로 범행시간을 정하고, 약속된 시간인 1992.1.17. 01:30경 피고인 김보은이 열어준 문을 통하여 피해자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어서 피해자가 술에 취하여 잠들어 있는 방에 몰래 들어가 피해자의 머리 맡에서 식칼을 한손에 들어 피해자를 겨누고 양 무릎으로 피해자의 양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피해자를 깨워 피해자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 김보은을 더이상 괴롭히지 말고 놓아 주라는 취지의 몇마디 이야기를 하다가 들고 있던 식칼로 피해자의 심장을 1회 찔러 그 자리에서 살해하하였다.

강도살인을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죽은 피해자의 양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은 다음 현금을 찾아 태워 없애고 장농, 서랍 등을 뒤져 범행현장에 흩어 놓고 나서, 피고인 김진관은 강도에게 당한 것처럼 피고인 김보은의 브레지어 끈을 칼로 끊고 양 손목과 발목을 공업용 테이프로 묶은 다음 달아나고, 피고인 김보은은 양 손목과 발목이 공업용 테이프로 묶인 채 옆집에 가서 강도를 당하였다고 허위로 신고하였다.

4.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인 김보은이 약 12살 때부터 의붓아버지인 피해자의 강간행위에 의하여 정조를 유린당한 후 계속적으로 이 사건 범행무렵까지 피해자와의 성관계를 강요받아 왔고, 그 밖에 피해자로부터 행동의 자유를 간섭받아 왔으며, 또한 그러한 침해행위가 그 후에도 반복하여 계속될 염려가 있었다면,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 김보은의 신체나 자유등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상태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판시와 같은 경위로 이루어진 피고인들의 이 사건 살인행위가 형법 제21조 소정의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하기는 어렵다.

나.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방위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당원 1966.3.15. 선고 66도63 판결; 1984.6.12. 선고 84도683 판결 각 참조).

피고인들이 사전에 판시와 같은 경위로 공모하여 범행을 준비하고, 술에 취하여 잠들어 있는 피해자의 양팔을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피해자를 깨워 피해자가 제대로 반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식칼로 피해자의 심장을 찔러 살해한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도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피고인들의 범행의 동기나 목적을 참작하여도 그러하다.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거나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하여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없다.

다.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 방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피고인들의 행위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상당성을 결여한 것인 이상 정당방위행위로 평가될 수는 없는 것이므로,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이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할 의사로 행해졌다기 보다는 공격의 의사로 행하여졌다고 인정한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있어서는 정당하다.

5. 심신장애 주장에 대한 판단

형법 제10조 소정의 심신장애의 유무 및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반드시 전문인의 의견에 기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범행의 경위, 수단,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제반자료와 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법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 당원 1983.7.12. 선고 83도1262 판결; 1990.11.27. 선고 90도2210 판결; 1991.9.13. 선고 91도1473 판결 각 참조).

그러므로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원심증인 김광일, 김재환의 법정에서의 각 진술부분과 그들이 작성하여 공판기록에 편철된 피고인들의 정신 및 심리상태의 조회에 대한 회신의 각 기재부분은 그들이 피고인들을 면담조차 아니한 채 변호인이 제공한 이 사건 공판기록의 일부분과 변호인이 작성한 “사실관계요지서”라는 서면에 기초하여 피고인들의 정신 및 심리상태를 분석하여 작성되었거나 이를 근거로 진술한 것이라는 이유로 배척하고,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들의 연령, 생활환경, 성장과정, 대학교 생활의 내용 및 성적, 이 사건 범행 당시의 상황, 그 범행 후의 정황 등과 그 밖에 수사기관을 비롯하여 제1심 및 원심법정에서의 피고인들의 태도 및 언동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미약한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하여 피고인들의 심신장애 또는 심신미약의 주장을 배척한 조처는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간다.
양형부당을 주장하는 부분에 대하여
피고인들에게 각 징역 10년 미만이 선고된 이 사건에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하여서는 형사소송법상 적법한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6. 위키피디아 설명

김보은 김진관 사건은 1992년 1월 13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김보은과 그녀의 남자 친구 김진관이 10여 년 동안 자신을 강간한 계부 김영호를 살해한 사건이다.

가. 개요

김보은의 어머니는 김보은이 7세 때 김영오와 재혼하였고, 김보은은 9세 때부터 김영오로부터 상습적인 강간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김영오는 김보은과 김보은의 어머니를 번갈아 강간하였으며, 집에 식칼과 쥐약을 갖다 놓고 사실을 알릴 경우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하였다.

김보은은 대학에 진학하여 기숙사에서 살게 되면서 주중에는 김영오로부터 떨어져 지낼 수 있었고, 자신의 괴로움을 남자 친구인 김진관에게 털어 놓았다. 김진관은 김영오를 찾아가 강간을 그만 둘 것을 요청하였으나 당시 충주지방검찰청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영오는 오히려 "다 잡아 넣겠다. 죽여 버리겠다"며 김보은과 김진관을 협박하였다.

김보은과 김진관은 강도로 위장하여 김영오를 살해하기로 공모하였고 1992년 1월 17일 김진관이 김보은의 집에 몰래 침입하여 김보은과 함께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김영오를 식칼로 살해하였다. 김진관은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고 집을 나갔으며, 김보은은 강도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들은 1월 19일 구속되었다.

나. 구명 운동

이 사건은 김진관의 아버지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전국에서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 대책 위원회"가 구성되어 이들의 구명 활동을 벌였다. 공동 대책 위원회는 김보은과 김진관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며, 22명의 무료 변호인단도 구성하였다. 또한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였다.

다. 판결

변호인단은 김보은과 김진관의 정당방위를 주장하였으나 재판부는 1992년 4월 4일 1심에서 김진관에게 징역 7년, 김보은에게 징역 4년을, 10월 2일 항소심에서 김진관에게 징역 5년, 김보은에게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피고인들은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12월 22일 상고를 기각하였다. 김보은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사면, 복권되었고, 김진관은 잔여형의 절반을 감형받았다. 김진관은 1995년 2월 17일에 출소한 후 1998년 2월 3일과 7월 16일에 복권 신청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라. 영향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금기시되었던 근친 성폭력의 실상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1991년에 일어난 김부남 사건과 함께 1993년에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최초의 고등법원 판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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