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매체(통장) 양도와 공동불법행위책임

1. 원고는 성명불상자인 제3자의 기망에 의하여 자신의 신용정보가 유출되어 원고 명의의 통장계좌의 돈이 피고 명의의 계좌로 이체된 직후 인출되었다. 이에 따라 원고가 계좌 이체된 돈 상당의 피해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성명불상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던 원고로서는 피고, 즉 성명불상자의 대출제의에 따라 피고 명의의 은행통장과 현금카드를 그 성명불상자에게 교부함에 따라 피고 명의의 은행통장과 현금카드가 위와 같은 범죄에 이용되도록 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피고를 상대로 공동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였다.

위 사건은 대구지방법원 2015. 2. 6. 선고 2014나14557 부당이득금반환등 사건에서 문제된 사안인데, 법원은 어떤 답을 내었을까?


2. 먼저 좀 더 자세한 사실관계를 알아보자.

가. 원고는 2013. 8. 22. 검사를 사칭한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로부터 전화로 “김성수라는 사람이 원고의 명의를 도용하여 지마켓에서 항공권을 구입하였는데 거기서 사기를 당한 사람들이 원고를 고소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원에 계좌를 확인하여야 하니 인터넷 spo-rnk.net에 접속해서 신고접수를 하라.”라는 말을 듣고, 위 사이트에 접속하여 원고 명의 대구은행 계좌와 비밀번호, 보안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위 사이트의 지시에 따라 원고 명의의 드림저축은행계좌에 추가로 계좌를 개설하였다.

나. 위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는 원고의 위 정보를 이용하여 공인인증서를 재발급받아, 원고 명의의 드림저축은행계좌(605-0213-)에서 피고의 농협은행계좌(302-0749-)로 합계 5,970,380원을 송금하였다(이하 ‘이 사건 범행’이라 한다).

다. 피고는 2013. 8.경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로부터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그에게 위 농협은행계좌의 통장과 현금카드 등을 주었다. 위 농협은행계좌는 2013. 8. 20. 신규 개설되었는데, 2013. 8. 22. 12시 33분경부터 12시 40분경까지 위 합계 5,970,380원이 입금되었고 그와 거의 동시에 하나은행 현금지급기로 5,580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액이 인출되었다.

라. 이 사건 범행을 수사한 대구중부경찰서는 ‘피고의 행위에 (접근매체의) 적극적 양도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입건치 아니하였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작성하였다.

3. 가. 법원은 먼저 민법 제760조 제3항의 의미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민법 제760조 제3항은 불법행위의 방조자를 공동불법행위자로 보아 방조자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부담시키고 있다.
방조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손해의 전보를 목적으로 하여 과실을 원칙적으로 고의와 동일시하는 민사법의 영역에서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가능하며, 이 경우의 과실의 내용은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타인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과실에 의한 방조로서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방조행위와 불법행위에 의한 피해자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 가능성과 아울러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책임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3다91597 판결 등 참조).』

다시 말해 민법 제760조 제3항 공동불법행위의 유형 가운데는 과실에 의한 방조도 포함되는데, 다만 이때도 타인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의무를 위반한 경우로서 과실에 의한 방조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에 의한 방조와 피해자의 손해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 가능성이 필요하다. 부수적으로 과실에 의한 행위가 피해 발생에 끼친 영향, 피해자의 신뢰 형성에 기여한 정도, 피해자 스스로 쉽게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는지 등의 사정 역시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나. 우리 사안에 직접 문제된 법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보자. 전자금융거래법이 금지하고 있는 접근매체(대포통장을 생각하면 된다) 양도행위를 공동불법행위의 한 유형인 과실에 의한 방조행위로 인정하기 위한 요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1)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제3항 제1호는 현금카드 등의 전자식 카드나 비밀번호 등과 같은 전자금융거래에서 접근매체를 양도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그 위반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바, 이는 예금주의 명의와 다른 사람이 전자금융거래를 함으로 인하여 투명하지 못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전자금융거래의 안정성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전자금융거래를 이용하는 목적이나 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의 내용이 다양하므로, 접근매체의 양도 자체로 인하여 피해자가 잘못된 신뢰를 형성하여 해당 금융거래에 관한 원인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접근매체 양도가 있었다는 사정 하나만 가지고는 과실에 의한 방조와 피해자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2) 따라서 접근매체를 통하여 전자금융거래가 이루어진 경우에 그 전자금융거래에 의한 법률효과를 접근매체의 명의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을 넘어
그 전자금융거래를 매개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접근매체를 양도한 명의자에게 과실에 의한 방조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접근매체 양도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에 기초하여 접근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불법행위에 접근매체를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있어 접근매체의 양도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7. 7. 13. 선고 2005다21821 판결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예견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접근매체를 양도하게 된 목적 및 경위, 그 양도 목적의 실현 가능성, 양도의 대가나 이익의 존부, 양수인의 신원, 접근매체를 이용한 불법행위의 내용 및 그 불법행위에 대한 접근매체의 기여도, 접근매체 이용 상황에 대한 양도인의 확인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2다84707 판결 참조).

다시 말해 접근매체(통장) 양도 당시에 자신이 양도한 통장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거래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과 그 불법행위에 자신이 양도한 통장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그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점을 명의자가 예견할 수 있어야만 접근매체의 양도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고의의 방조행위를 처벌하는 형법에서는 이를 두고 “이단의 고의”, “이중의 고의”라고 한다. 정범(본범)의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방조행위에 대한 고의가 모두 인정되어야 고의의 방조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과실에 의한 행위로 인하여 해당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한다는 사정에 관한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만 과실에 의한 공동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법리를 접근매체 양도의 경우에 적용한 결과이다.

다. 자 이제 우리 사안으로 돌아와 보자.

피고가 접근매체인 통장과 현금카드를 제3자에게 양도했을 당시를 기준으로 자신의 접근매체 양도행위로 인하여 제3자가 이 통장을 이용하여 입금사기의 수단으로 사용하리라고 예견할 수 있겠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1) “피고는 2013. 8.경 이름을 알 수 없는 자로부터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그에게 위 농협은행계좌의 통장과 현금카드 등을 주었다. 위 농협은행계좌는 2013. 8. 20. 신규 개설되었는데, 2013. 8. 22. 12시 33분경부터 12시 40분경까지 위 합계 5,970,380원이 입금되었고 그와 거의 동시에 하나은행 현금지급기로 5,580원을 제외한 나머지 전액이 인출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이 사건 범행을 수사한 대구중부경찰서는 ‘피고의 행위에 (접근매체의) 적극적 양도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입건치 아니하였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작성하였다.”

(2) 법원은 피고에게 자신의 통장이나 현금카드가 범죄행위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하였다고 단정할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피고 명의의 계좌는 이미 원고가 성명불상자에게 기망당한 후 재산을 처분하는 데 이용된 수단에 불과하고, 원고가 피고의 계좌의 존재로 인하여 잘못된 신뢰를 형성하여 돈을 이체하기에 이르렀다거나, 이름을 알 수 없는 자가 피고의 계좌의 존재로 인하여 원고의 재산권에 대한 접근 및 침해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다.

결국 피고의 주의의무 위반(접근매체 양도 행위)과 원고의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By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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