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분양전환 요건으로서의 임차인과 아름다운 판결문

1. 가. 임대주택에 입주하였던 임차인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임대주택에 관하여 우선분양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임차주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① 적법․유효한 임대차계약에 기한 임차인이어야 하고, ② 일정한 기간 동안 각 해당 임대주택에 거주해야 하며, ③ 무주택자라는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나. 이와 같은 법리는 얼마 전에 블로그에 게재한 "임대주택 우선분양 자격의 요건"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이와 관련하여 꼭 같이 봐야 할 판결문이 있다. "아름다운 판렬문"으로 소개되고 있는 박철 변호사님(당시 부장판사님)의 대전고법 2006.11.1, 선고, 2006나1846, 판결문이다.

 분양전환신청 당시 일정기간의 거주, 무주택자라는 요건과 함께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임차인 요건을 과감하게 깨뜨린 판결이다.  By 마석우 변호사

2. 재판부의 판단 부분만을 옮긴다. 

가.  이 사건의 쟁점은, 피고 2가 임대주택법 제15조에 의하여 임대주택을 우선분양받을 권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위 법 제15조 제1항 제1호가 우선분양자로 규정하고 있는 ‘입주일 이후부터 분양전환 당시까지 당해 임대주택에 거주한 무주택자인 임차인’이라는 권리발생요건 중 ‘임차인’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법률문제에 관한 판단과 관련하여 이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 주목하였다.

(1) 입법부가 임대주택법을 제정하여 임대주택사업을 지원하는 한편 일정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은, 임대주택 건설을 촉진하고 국민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위 법 제1조).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다양한 사정에 의하여 주택을 임차하려는 상당한 수요가 있는 반면에 투자금액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의 사정으로 임대주택의 공급은 항상 부족한 문제점이 있다. 또한 경제적, 관행적 이유에서 보증금(전세금)이 비싸기 때문에 목돈이 없는 사람들은 주택을 임차하기 어렵고 장기임대주택을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그래서 입법부는 임대주택법을 통하여 장기주택임대를 영업으로 하는 주택임대업자를 지원하여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한편 부족한 임대주택이 실수요자에게 제공되도록 하기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이 법률이 달성하고자 하는 위와 같은 공익적 목적을 충분히 참작하여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임대주택의 건설과 임대사업 영위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원고 대한주택공사의 존재 이유가 바로 국민생활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증진이라는 공익적 이유에 있음( 대한주택공사법 제1조)도 간과할 수 없다.

(2) 임대주택법은 주택임대업자가 임대의무기간 후 임대주택을 분양전환하여 투자자금을 일시에 회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서도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 우선분양의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주거와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임대주택법 제15조 제1항 제1호가 우선분양 권리의 발생요건으로 ‘입주일 이후부터 분양전환 당시까지 당해 임대주택에 거주한 무주택자인 임차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이 무주택자를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임대주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분양에 있어서 아직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서민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고, 실제 거주한 임차인을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한정된 자원의 분양에 있어서 실수요자를 우선 배려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위 규정에서 말하는 ‘임차인’의 의미를 밝히고, 이 사건에서 피고 2가 그 ‘임차인’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위 규정의 목적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

(3) 이 사건의 구체적 사안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건대, 이 사건 임대주택의 임차 목적은 분명히 피고 2의 주거공간을 구하는 것이었지 피고 1의 주거공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건 임대주택을 임차하여 그곳에 거주하겠다는 결정을 한 자는 피고 2이었고 보증금으로 지급된 자금 역시 그의 것이었다. 다만, 피고 2가 처의 병수발로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원고 공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자신의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둘째 딸인 피고 1에게 임대차계약의 체결을 부탁하였다. 이 사건에서 피고 1이 자신의 명의로 아버지의 주거에 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어떠한 이익을 얻거나 법적 규제를 회피하려 하였던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고 1이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원고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것은 법적 권리에 관하여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위와 같은 실수가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피고 2가 임대주택을 우선분양받을 권리를 갖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피고 2는 현재 75세의 고령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이다. 경제적 활동을 할 능력을 잃었고 넉넉한 재정능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사정에 놓여있는 피고 2에 대하여 임대차계약 체결과정에서 있었던 작은 실수 때문에 이제 와 그 주거공간에서 계속 거주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고 하기에는, 원인이 된 피고들측의 잘못과 그 결과 사이에 균형을 잃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 법률용어로서의 ‘임차인’이라는 단어가 임대차계약의 양 당사자 중 부동산을 빌리는 측 당사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굳이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법률 문언의 올바른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법률용어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법률이 달성하고자 한 정책목표와 우리 사회가 법체제 전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를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위 법률의 문언만이 아니라 위 법률이 달성하고자 한 정책적 목표와 위 법률이 의도한 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피고 2의 주거안정은 당초부터 위 정책목표와 계획상의 보호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지 그 바깥에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정책적 목적과 계획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사용된 언어가 그 정책적 목적과 계획의 실행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방향으로 해석되고 집행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러한 법해석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에서 피고 2가 무주택자이고 이 사건 임대주택에 대한 실수요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본 특별한 사정 때문에 임대차계약상의 임차명의인이 아니라고 하여 그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이 법의 공익적 목적과 계획에 부합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법상의 임차인의 요건을 그렇게까지 문언적, 법형식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사건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 사안에서 임대차계약의 목적과 재정적 부담과 실제 거주자라는 실질적 측면에서 사회적 통념상 임차인으로 충분히 관념될 수 있는 피고 2가 위 법상의 임차인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위 법의 공익적 목적과 계획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5) 가장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도 세상사 모두를 예상하고 대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장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법도 세상사 모든 사안에서 명확한 정의의 지침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법은 장래 발생 가능한 다양한 사안을 예상하고 미리 만들어두는 일종의 기성복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다양한 치수의 옷을 만들어 두어도 예상을 넘어 팔이 더 길거나 짧은 사람이 나오게 된다. 미리 만들어 둔 옷 치수에 맞지 않다고 하여 당신의 팔이 너무 길거나 짧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니 당신에게 줄 옷은 없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옷의 길이를 조금 늘이거나 줄여 수선해 줄 것인가? 우리는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원이 어느 정도 수선의 의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의회가 만든 법률을 법원이 제멋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의도된 본래의 의미를 갖도록 보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체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  이상과 같은 점을 참작하여 이 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세 명의 판사는, 임대주택법 제15조 제1항 제1호의 ‘임차인’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서 이 사건 사안과 같은 특별하고도 예외적인 사정을 참작하는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점과 피고 2가 그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 요건을 갖추었다는 점과 그리하여 피고 2가 이 사건 임대주택에 관하여 우선분양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점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  이 사건 심리 과정에 이 법원이 양측에 조정 가능성을 문의하였을 때, 원고 공사는, 피고 2측의 특별하고 딱한 사정을 참작하여 임대주택을 분양해 줄 경우 향후 유사 사정이 있는 자가 근거 없는 분양을 주장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조정에 응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는 이 견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이 판결은 원고 공사가 염려하듯 임대주택법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정책목표를 가로막는 나쁜 선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임대주택법이 사용한 용어에 실질적이고도 살아있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안에서까지 임대주택법의 정책적 목표와 계획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선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위 법이 사용한 용어의 의미를 형식적으로만 이해할 경우 위 법의 정책적 목표와 계획은 통상적인 사안에서만 달성될 수 있을 뿐이고 우리 사회에서 장래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예외적 사안에서 정책목표와 계획의 달성을 포기하여야 하는 나쁜 선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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