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원칙을 이유로 차량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분석과 교훈

신뢰의 원칙을 이유로 차량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 분석과 교훈


1. 신뢰의 원칙(信賴- 原則)이란 스스로 교통규칙을 준수하는 운전자는 다른 교통관여자 역시 교통규칙을 준수할 것이라고 신뢰하면 족하며, 다른 교통관여자가 교통규칙을 위반하여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것까지 예견하고 이에 대한 방어조치(결과회피를 위한 조치)까지 취할 의무는 없다는 법리를 말한다.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도로교통의 경우이다. 대법원은 차:차 사고 또는 차:자전거 사고에는 널리 인정하되 차:보행자 사고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적용하고 있다. 다만 차:보행자 사고일지라도, 고속도로에서의 보행자 사고, 신호등 적색시 횡단보도 보행자에 대한 교통사고, 육교 밑 횡단 보행자에 대한 교통사고, 자동차전용도로에서의 보행자 교통사고에는 이 원칙을 적용한다.



2. 최근 하급심 판결 가운데 신뢰의 원칙을 적용하여 교통사망사고에 무죄를 선고한 사건이 있기에 소개한다. 바로 대전지방법원 2014. 10. 2. 선고 2014고단2050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사건이다.

가. 먼저 판결 요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피고인이 차량을 운전하여 진행 중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를 충돌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야간에 제한속도 범위 내에서 운행하고 있던 피고인으로서는 바로 근처에 육교가 있고 중앙분리대가 화단으로 조성된 왕복 6차로의 도로에서 보행자가 무단횡단하지 않을 것으로 신뢰할 수 있었고, 달리 이러한 신뢰의 원칙이 배제될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피고인에게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무죄

나.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자.

(1) 먼저 공소사실에 나와 있는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에 의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아래와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채 그대로 진행한 과실로 피고인이 운전하던 승용차량의 우측 앞부분으로 피해자의 좌측 몸 부분을 들이받았다. 피고인의 이와 같은 과실로 피해자를 2014. 4. 3. 05:26 두개골골절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다음으로 공소사실에 나와 있는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 주의의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2014. 4. 3. 05:10경 위 승용차를 운전하여 대전 서구 도로의 3차선 중 2차로를 평송수련원 쪽에서 한밭대교 네거리 방면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는 일출 전이고 피고인이 운행하는 위 승용차의 오른쪽으로 대형 화물차량이 진행하고 있었으며, 피해자 乙(72세)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경우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자로서는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

(2) 여기서 문제는 위와 같은 “전방 및 좌우를 잘 살펴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하게 운전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피고인에게 인정되느냐 여부다. 바로 신뢰의 원칙이 문제되는 영역이다.

먼저 도로를 운행하는 운전자로서 피고인은 상대방 교통관여자 역시 제반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을 신뢰하고 이러한 신뢰에 기초하여 운행을 한 이상 그 운전자에게 업무상 주의의무 위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공소사실과 같은 주의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변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의 원칙은 상대방 교통관여자가 도로교통 관련 제반법규를 지켜 자동차의 운행 또는 보행에 임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적용이 배제된다(1984. 4. 10. 선고 84도79 판결, 대법원2002. 10. 11. 선고 2002도4134 판결 등 참조)” 이 판결은 이 사건에서 신뢰 원칙의 적용을 배제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이 판결이 교통사망사고에 대해 신뢰의 원칙을 적용할지 아니면 배제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검토한 제반 사정들이 무엇인지 주목해보자.

(3) ① 이 사건 사고 당시 시간은 4월 3일 새벽 5시 10분경 일출 전으로 사고 장소가 상당히 어두웠다.
② 이 사건 사고 장소는 왕복 6차선 도로로 큰 규모의 화단이 중앙분리대로 조성되어 있고 바로 근처에 육교가 설치되어 있어서 피고인으로서는 도로를 횡단하려는 보행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예견하기 어려웠다.
③ 피고인은 제한속도 범위 내의 속도로 신호에 맞게 운행하였다.
④ 피고인이 운행한 차량의 급정거로 인한 스키드마크가 발견되지 아니하였다.
⑤ 피해자는 당시 검은 색옷을 입고 이 사건 사고 장소 바로 근처에 육교가 있음에도 도로를 무단횡단하였다.
⑥ 피고인 차량이 도로의 2차로로 진행하던 중 그 옆 3차로에 대형 화물차가 앞서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위 화물차 앞을 횡단하던 피해자를 상당한 거리에서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갑자기 화물차의 앞을 가로질러 나온 피해자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화물차 운전사가 경적을 울리기는 하였으나 이는 화물차 앞을 가로질러 가던 피고인에게 경고음을 보낸 것이었고, 이러한 경적으로 인하여 제한속도 범위 내의 속도로 운행하던 피고인이 바로 근처에 육교가 있고 보행자의 통행이 금지된 장소에서 그 진행방향 앞쪽에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다고 생각하여 즉시 서행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위와 같은 사정을 검토한 후, 이 판결은 제한속도 범위 내에서 운행하고 있던 피고인은 바로 근처에 육교가 있고 중앙분리대가 화단으로 조성된 왕복 6차로의 도로에서 보행자가 무단횡단하지 않을 것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피고인에게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4) 먼저 보아야 할 것은 ② 이 사건 사고 장소가 왕복 6차선 도로로 큰 규모의 화단이 중앙분리대로 조성되어 있고 바로 근처에 육교가 설치되어 있어서 도로를 횡단하려는 보행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예견하기 어려운 장소라는 점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당시 시간대가 ① 4월 3일 새벽 5시 10분경 일출 전으로 상당히 어두웠다는 점을 고려한다.

다음으로 신뢰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운전자 스스로 교통규칙을 준수하여야 하므로 ③ 피고인은 제한속도 범위 내의 속도로 신호에 맞게 운행하였다는 점과 ④ 피고인이 운행한 차량의 급정거로 인한 스키드마크가 발견되지 아니하였다는 점을 확인한다(급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스키드마크를 통해 사고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는 과속하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본 것 같다).

위와 같은 점이 확인되면, 일단 신뢰의 원칙이 일응 적용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운전자가 상대방(보행자)의 규칙위반사실(무단횡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기대할 수 있는 경우에는 신뢰원칙의 적용이 배제된다.
여기에 대응되는 사실심리 부분이 ⑤와 ⑥으로 보인다. ⑤ 피해자는 당시 검은 색옷을 입고 이 사건 사고 장소 바로 근처에 육교가 있음에도 도로를 무단횡단하였기에 운전자인 피고인이 피해자의 무단횡단 사실을 미리 알거나 알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특이한 사항이 ⑥ 피고인 차량이 도로의 2차로로 진행하던 중 그 옆 3차로에 대형 화물차가 앞서 진행하면서 경적을 울린 사실이 있기는 하지만 이 화물차 앞을 횡단하던 피해자를 상당한 거리에서 용이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경적 소리를 듣고 무단횡단 보행자가 있으리라고 예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다. 결론

(1) 교통 사망사건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사망사건임에도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어 과실이 부정되는 바람에 형사처벌은 고사하고 민사배상조차 기대할 수 없게되었다. 반면에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만일에 과실이 인정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교통규칙을 모두 준수하였음에도 결과의 중대함때문에 처벌받는 가혹한 결과가 되고 만다. 신뢰원칙의 적용범위를 둘러싸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2) 이 판결문을 통해 만일 이와 동일한 사건을 맡게 된다면 변론의 방향을 잡는데 필요한 체크포인트를 정리해보자.

먼저 사고 당시의 장소와 시간대에 관한 파악을 통해 신뢰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인지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로 피고인은 교통규칙을 모두 준수했는지 여부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해두어야 한다. 세 번째로 설령 신뢰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규칙위반을 이미 인식한 경우이거나 상대방의 규칙준수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유아, 노인 등)에는 신뢰의 원칙이 다시 배제될 수 있으므로 그와 같은 사정의 유무를 체크해야 한다. By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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