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수사를 상고이유로 주장했건만... 국선변호의 추억

함정수사를 상고이유로 주장했건만... 국선변호의 추억

1. 항소이유서를 작성할 때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점(기록접수통지를 받고 20일 이내에 반드시 항소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과 함께 반드시 꼭 알고 있어야 할 정말 중요한 법리가 있다. 

바로 항소심에서 심판대상이 되지 않은 사항은 상고심의 심판 범위에 들지 않는 것이어서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로 주장하지 아니하거나 항소심이 직권으로 심판대상으로 삼은 사항 이외의 사유에 대하여는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 대법원 2005. 7. 14. 선고 2005도2996 판결, 대법원 2007. 3. 15. 선고 2006도8690 판결 등 참조)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항소이유에 적지않은 사유는 상고이유서에도 적지 못한다는 것이고 이후에 항소심(2심) 재판부는 물론이고 대법원에서도 판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이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거나 새로운 주장사유가 착안되더라도 원칙적으로 이를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으므로 웬만하면 항소이유서에 항소이유로 모두 적어놓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아래와 같은 법리가 있다.    

항소법원은 직권조사사유가 아닌 것에 관하여는 그것이 항소장에 기재되어 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소정 기간 내에 제출된 항소이유서에 포함된 경우에 한하여 심판대상으로 할 수 있고, 다만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유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항소이유서에 포함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직권으로 심판할 수 있고, 한편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항소이유서에 포함시키지 아니한 사항을 항소심 공판정에서 진술한다 하더라도 그 진술에 포함된 주장과 같은 항소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1998. 9. 22. 선고 98도1234 판결 등 참조)는 것이다. 

적어도 기록접수통지 받고 20일 이내에 제출하는 항소이유서에 적혀 있지 않은 사유는 항소심에서 원칙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고심에서 상고이유로 삼을 수 없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주목할 부분은 뒷부분 문장이다. "항소이유서에 포함시키지 아니한 사항을 항소심 공판정에서 진술한다 하더라도 그 진술에 포함된 주장과 같은 항소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목. 항소심에서 새로운 사항이 착안되어 이것을 공판정에서 주장하고 변론요지서에 적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항소이유가 될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 항소법원의 심판범위 참조

항소이유서를 제때 내는 것과 함께 항소이유서에 웬만한 사유는 모두 적는다는 것. 항소이유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두 가지 유념사항이다.

2. 재작년에 담당했던 국선사건에서 이런 점을 절실하게 경험한 적이 잇다. 항소심판결문과 함게 국선변호인 지정서를 대법원에서 받고 기록을 복사해 읽어보니 피고인의 사정이 정말 딱하다. 

가. 마약사범으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받은 피고인이 항소했지만 항소기각되고 다시 상고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구속상태에서 1심과 항소심을 거치며 미결구금일수가 이제 한 달 후면 6개월이 되어 모두 만료될 사건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대법원 선고가 어떻게 나든 구치소에서 나올 수가 있다. 그런데 아뿔사!! 예전에 받은 형의 집행유예가 있어서 대법원 상고기각판결이 나면 바로 예전의 징역형이 되살아 나고 그 형을 살아야 할 처지가 아닌가. 더구나 집행유예 기간 만료기일이 몇 달 남지 않아 대법원 계류 기간을 어떻게 해서든 늘여 대법원 판결선고가 집행유예 만료기일 뒤에 나기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는게 아닌가!!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자가 유예기간 중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된 때에는 집행유예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형법 63조). 형을 살아야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그 선고의 실효(失效) 또는 취소됨이 없이 유예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고(형법 65조) 형을 살지 않아도 된다. 형 선고가 효력을 잃은 후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상관없다) 
어떻게 해서든 대법원을 헷갈리게 해서 대법원에서 몇 달을 버티게 하여 예전 형의 집행유예기간을 넘기도록 해주어야 할 사안이다. 

나. 이런 저런 상고이유를 주장하기 위해 기록을 몇 번이나 읽으며 궁리를 거듭했다. 
기록 속에 있던 항소이유를 토대로 하여 그 내용을 부풀리거나 대법원 판례를 리서치하여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공판기록을 읽다보니 항소심 변호인께서 공판정에서 함정수사에 빠져 이 사건 마약범죄를 범하게 되었다고 주장해놓으신게 아닌가? 

함정수사라... 일반적으로 함정수사 가운데 범의유발형의 함정수사는 위법하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위법한 범의유발형 함정수사가 있는 경우 그 법적 효과 부분이다.  양형에 고려하면 충분하다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밖에도 공소기각설, 위법성이나 책임이 조각되어 처벌할 수 없다는 학설까지 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의 없는 사람에 대하여 범행을 적극권유하여 범의를 유발케 하고 범죄를 행하도록 한 뒤 범행에 이른 사람에 대하여 그 행위를 문제 삼아 공소를 제기한 것은 적법한 소추권의 행사로 볼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규정된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공소기각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2007.10.23. 선고 2008도7362 판결 등).


대법원 전경(출처: VOA)


다.  다시 이것을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형사소송법 제323조 “형의 선고를 하는 때에는 판결이유에 범죄될 사실, 증거의 요지와 법령의 적용을 명시하여야 하며, 법률상 범죄성립을 조각하는 이유 또는 형의 가중·감면의 이유되는 사실의 진술이 있을 때에는 이에 대한 판단을 명시하여야 한다.”는 조항과의 결합이다. 유죄판결에 명시할 사항 중 어느 하나를 전부 누락한 경우에는 파기사유가 되므로(제383조 제1항), 상고심에서 2심판결을 파기만 하면 집행유예기간을 넘길 수 있는 시간이 흐르리라 기대를 했던 것이다. 

실제로 피고인의 마약범죄가 기회제공형였는지 범의유발형였는지 범의유발형이라고 하더라도 그 법적 효과가 위법성이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인지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주장을 했는데도 판결에 이에 대한 판단을 적지 않아 파기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엉뚱한데서 나왔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내가 주장하는 상고이유에서 답변하지 않았다. 2심 판결에는 피고인 변호인의 함정수사 주장에 대한 판단이 전혀 없으니 파기되어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주장은 앞에서 본 법리에 막혀버렸던 것이다. 항소이유서에 위법한 함정수사가 있었다는 주장이 적혀 있지 않으므로 공판정에서 주장한 것만 가지고는 항소이유가 될 수 없고 또 새삼스럽게 다시 상고이유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사람은 한 달 후 자유의 몸이 되었을까? 아니면 예전의 형이 부활되어 형을 살게 되었을까? 

2년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과 대법원 국선변호인을 열정적으로 준비하던 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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