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률적 변경 불허는 위헌, 주민번호 대량유출되면 변경 허용

1. A씨의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됐다. A씨도 신용카드 회사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피해자였던 것.

불안해진 A씨는 자기가 사는 구청에 “신용카드 회사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현재 부여된 주민등록번호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를 번호에 의미가 부여되어 있지 않은 형태로 변경해 줄 것을 청구한다.”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구청에서는 “현행 주민등록법상 가족관계사항의 변경이나 주민등록번호의 오류 없이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사유로 주민등록번호 변경 및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번호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뿐 자신의 주민등록을 고쳐주지 않고 있다.

2. A씨는 법원에 구청에서 주민등록번호변경 신청을 거부한 것이 위법하다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거부됐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번호 불법 유출을 원인으로 한 주민등록번호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런 주민등록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A씨는 주민등록번호 대량유출과 같은 사태가 벌어져 주민등록번호가 오남용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여 그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 주민등록번호 변경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현행 주민등록법은 위헌이라는 취지로 헌법재판소에 주민등록법을 대상으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위헌이유는 필자가 추정하여 적은 것이다)

3. 헌법재판소의 답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주민등록법 제7조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사실상 위헌 결정이다. 헌법재판소 2015. 12. 23.선고 2013헌바68 주민등록번호 변경 사건에서다.

다만 2017. 12. 31.까지 국회에 개정할 시한을 줬다. 이날까지 고치지 않으면 그때부터 법의 효력이 사라지고, 그때까지는 법을 계속 적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했다. 어쨌든 위헌이라는 답을 얻었던 것.

4.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이유를 보자. (소제목은 필자가 달았다. 위헌심사기준에 유의하면서 단계별 제목을 달아 놓은 것)

가. (현행 주민등록법상 변경불허 조항이 기본권=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이다.
주민등록번호는 모든 국민에게 일련의 숫자 형태로 부여되는 고유한 번호로서 당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이다. 그런데 주민등록법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주민등록번호 불법 유출 등을 원인으로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고자 하는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나. (기본권 제한이 합헌이기 위한 요건, 기본권 제한의 비례성 요건을 갖추었나? 적합성, 필요성, 상당성 = 과잉금지 원칙)

(1) (적합성 요건은 갖추었다)

주민등록번호제도는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모든 주민에게 고유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면서 이를 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2) (일률적으로 변경을 불허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과도한 기본권 제한으로 기본권 침해. 필요성, 상당성 요건 결여)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는 단순한 개인식별번호에서 더 나아가 표준식별번호로 기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정보를 통합하는 연결자(key data)로 사용되고 있는바, 개인에 대한 통합관리의 위험성을 높이고, 종국적으로 개인을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관리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이 있으므로 주민등록번호의 관리나 이용에 대한 제한의 필요성이 크다.

또한, 현대사회는 개인의 각종 정보가 타인의 수중에서 무한대로 집적, 이용 또는 공개될 수 있으므로 연결자 기능을 하는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 또는 오·남용되는 경우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생명·신체·재산까지 침해될 소지가 크고, 실제 유출된 주민등록번호가 범죄에 악용되는 등 해악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주민등록번호 유출 또는 오·남용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피해 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일률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

(3) (개인정보보호법 등 정부의 보완이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 위헌 상태가 시정되지는 않고, 한편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더라도 극심한 혼란 상태를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국가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입법을 통하여 주민등록번호 처리 등을 제한하고, 유출이나 오·남용을 예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해도,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처리하거나 수집·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미 유출되어 발생되는 피해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이러한 조치는 국민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충분한 보호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한편,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더라도 변경 전 주민등록번호와의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활용한다면 개인식별기능과 본인 동일성 증명기능이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고, 입법자가 정하는 일정한 요건을 구비한 경우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기관의 심사를 거쳐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면 주민등록번호 변경절차를 악용하려는 경우를 차단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을 것이다.

(4) (결론적으로)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심판대상조항(주민등록법)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위헌이다.

5. (그러나 위헌임에도 단순위헌을 선고하여 막바로 법적용을 못하게 하지는 않고 헌법불합치를 선고하여 국회에서 개정할 때까지는 일단 현행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다만,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은 주민등록번호 변경에 관하여 규정하지 아니한 부작위에 있는바, 이를 이유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주민등록번호제도 자체에 관한 근거규정이 사라지게 되어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되고, 주민등록번호 변경제도를 형성함에 있어서는 입법자가 광범위한 입법재량을 가지므로, 심판대상조항에 대하여는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2017.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계속 적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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